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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육과 교육 둘 다를 애써야 하는 점이
            회원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생각이 있어             ള۲җ੿ਸ ૝যࠁ׮                      지금의 현실은 어떻다고 보세요?
            요.                                                               모임 내부의 사역자를 세우는 일에는 좋
            고민해 봤어요. 왜 회원들이 힘든지. 역량          공동체의 훈련과정을 어떻게 점검해야             을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그걸 위해서
            이 부족한 건가? 아니면 과함에서 오는 불 할까요?                                     일했다면 더 큰 문제지요. 그저 조직을 유
            균형인가? 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세 가지를 포인트로 삼았어요. ‘과연 이것         지하는 거니까. 역할이라고 그러면 딱 상
            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는           은 가능한가?’, ‘과연 유용한가?’ 더 나가       황과 맞아요. 우리 선교회의 책임 간사를
            구나.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건 맞          서 ‘진짜 바람직한가?’라는 질문이죠.           세우는 일을 위한 것. 조직 유지하기. 지금
            는데, 동시에 하려니까 힘들다. '한쪽에 집         첫 번째, 이것은 가능한 것인가. 실제로 무 의 훈련과정은 교사선교사 파송을 말하지
            중하고 다른 한쪽은 버리자’ 이건 분절적           장과정까지 몇 년이 걸리고 있는지 보자           만, 사실상 선교회 내부의 역할을 맡을 사
            이고 편의적인 해석이에요. 두 마리 토끼           는 거죠. 비그리스도인이 무장 과정까지           람을 세우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고 봐요.
            를 잡는 것은 맞는데, 동시에 잡으려니까           가는 데 십 년이 걸리고 있다면, 이것은 가        결국 우리는 20년 동안 이렇게 맨파워가
            힘들어요. 그럼 지혜롭게 순서를 이루었으           능한 것일까요? 우리가 처음 과정을 세울  많아지고 지역이 널리 퍼지고. 이렇게 된
            면 좋겠어요.                          땐 될 거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이뤄지는          거는 우리 안에 조직을 유지한 것이라고
            지금까지가 양육적 방법의 교사선교사였             현실에서는 그것을 좀 명확하게 살펴봐            봐요. 훈련의 단계를 만드는 그런 성격으
            다면, 이제는 '교육적 방법의 교육선교사'          야 해요.                           로 우리가 지금까지 해 왔어요. 그러는 동
            를 의미한다. 제가 내린 정의예요. 가령 신         둘째, 유용한 거냐. 지난 20년 동안 무장        안 우리 머릿속에 그것이 마치 절대적인
            규교사인 한 사람이 선교회의 회원이 됐어           과정을 통해서 파송한 사람은 얼마나 되           것처럼 팍 박혔어요. 그런데 기독교 역사
            요. 그럴 때 교육의 영역을 쌓는 것이 먼저         고, 파송한 교사선교사로 인해서 선교회           를 봤을 때 그렇게 성장한 그리스도인이
            다. 복음보다 교육이에요. 만약에 그 사람          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 몇 명이나 될까요? 그러면 이것은 우리가
            이 양육을 시작한다면 문제지요. 자신의            가 있잖아요. 그런데 20년 동안 파송한 교
            교실이 세워지지 않았는데 학부모들 동의            사선교사가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모르겠
            서 받으면서 양육하겠다면 어떤 일이 벌어           지만, 제가 보기에 그 결과가 너무 터무니
            질까. 그건 건강하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없는 거죠. 유용하지 않다는 거죠.
            오히려 신규 교사로 갓 발령받은 친구들에 셋째로, 이것이 바람직하냐는 질문을 던져
            게는 교육의 역량을 계속 쌓아 주어서, 이          봅니다. 영적 성장을 이런 단계로 정하는
            친구가 정말 교사로서 어느 정도 성장한            게 성경적이고 복음적인지 물어보고 싶은
            상태가 될 때 양육적인 요소가 복음적인            거죠. 물론 당시의 문화적 배경이라든지
            요소와 같이 들어가 줘야 더 건강해요.            선교 흐름과 교계의 암묵적인 공감이 있었
            순서가 중요하죠. 지금은 그게 거꾸로 되           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렇게 사람의
            어 있는 상황이에요. 이건 공동체적인 합           영적 모습을 단계별로 나누는 것이 적절
            의가 필요한 영역이죠.                     한 개념인지, 바람직한 건지 질문을 던지
            오히려 이 지점에서 제가 고민하는 것은            고 싶어요.
            따로 있어요. 우리의 훈련 과정에 있어서           그렇다면 우리는 가능하지도 않고, 유용
            과연 비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이 되고,            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이 구조를
            제자가 일꾼이 되어서 교사 선교사로 성장 포스트 비전에서도 계속할 건가요? 이것
            한다는, 이 흐름에 대한 의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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