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0 - E-BOOK
P. 240
명칭을 떠나 본질에 주목해보겠습니다.
기독교사의 역할을 ‘복음적 실천’과 ‘교육
적 실천’으로 말씀하셨죠. 기독교사의 복 위의 개념이 아니죠. 그런데 우리는 양육
음적 실천이란 디모데양육인가요? 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이걸
그것도 될 수 있죠. 먼저 해야 하고, 제일 강조해야 하고, 끝
까지 잡아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웬걸. 그
아니면 복음적 실천의 한 부분이 디모데 게 아니라는 게 지금 드러나고 있어요.
양육인건가요?
그건 사람의 부르심에 따라 다르지 않을 결국 복음적 실천과 교육적 실천의 귀결
까요? 어떤 카테고리로 볼 것인가. 거기에 점은 뭘까요?
따라 양육의 양상이 달라질 것 같아요. 어 양육과 교육은 기독교사의 내면에서 통합
떤 사람은 내 입으로 '예수님 믿으세요'라 이 돼요. 경험에 의하면, 그 통합은 한 교
고 전했나? 이것이 복음의 실천이라 여기 사 안에서 내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
선교가 뭐예요. 복음 전하는 거잖아요. 복 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니면 그 폭도 상 것을 의도적으로 하는 게 인위적이에요.
음이 뭐죠?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거예 대적으로 넓은 사람은 다른 직간접적인 활 오히려 분절되죠. 복음적인 것도 아니고
요. 하나님 나라가 복음이라고 얘기하면 동으로 범위를 넓힐 수 있겠고요. 교육적인 것도 아닌 이상한 형태로 변질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개념이 할 가능성도 있어요.
죠. 그렇다면 제자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 기독교사의 교육적 실천이란 무엇인가요? 또한 둘은 끄트머리에서 하나로 만나요.
는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세 가지가 맥이 어떻게 정의가 될지 모르겠어요. 아까 말 하나님 나라로 귀결되는 거죠. 어떤 사람
통하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교육계에 했듯이 교육은 쌓아가는 부분이라 우리 은 이쪽에 어떤 사람이 저쪽에 집중했지
서 이루지? 나는 교육계에서 하나님 나라 가 어디까지 가야 할지를 지금 정하는 건 만, 결국 하나님이 맞추고 계신 전체 그림
를 만드는 사람이네? 그럼 내가 지금의 교 어려워요. 어떤 분들은 교육적 실천을 교 의 퍼즐이에요. 귀결점으로 두 가지가 나
사 역할을, 교육을 본연의 하나님 나라의 육 전문성과 같은 의미로 쓰시는 것 같아 란히 가야 해요. 양육이 한 쪽에 있고 다
모습으로 돌리는 일에 충실해야지. 이렇 요. 온전한 개념일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 른 쪽에 교육 실천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
게 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 있죠. 각자의 경험에서 오는 범주이기 때 나라로 귀결됩니다. '귀결로서의 서로에
름입니다. 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봐요. 조 대한 신뢰’가 필요해요.
금 더 시간이 지나면 또 확장될 수 있겠죠.
ӝةҮࢎܳ ݈ೞ 이 영역은 우리가 지금 탐구하고 있는 중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회원들 입장에
이에요. 때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서 기독교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
교육학자나 교육실천가들의 말이 훨씬 더 까요?
우리가 길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교사선 복음적일 수 있어요. 더 성경적일 수 있어 아이들 잘 가르치는 거죠. 본인이 할 수 있
교사냐 교육선교사냐’의 이야기를 어떻 요. 그래서 함석헌 선생의 책 같은 것을 많 는 영역까지를 충실하게 하는 거예요. 그
게 보십니까? 이 읽어야 해요. 그 속에서 우리가 아직 가 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교사의 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길러내는데 있어서 20 져오지 못한 교육적 담론을 배워야 해요. 반적인 기준으로 '교사는 이 정도는 해야
년 동안 힘을 쏟았어요. 그 결과 정말 꿈꿨 앞으로 개척할 지점이죠. 쌓아야 하고. 여 지'라는 그 수준의 약간 이상만 하더라도
던 로드맵에 따라 교사선교사들이 길러졌 기에 진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죠. 다른 교사들의 모델이 된다고 생각합니
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냉철하게 다. 그런데 그거보다 못하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죠. 그러한 논의 복음적 실천과 교육적 실천은 통합될 수 왜 모였지?’라는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없
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명칭이 결정되는 있을까요? 어요.
거죠. 여기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다 보 두 가지가 같은 건 아니에요. 교육과 양육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담보할 수 없어요.
면 교사선교사냐 교육선교사냐, 아니면 은 달라요. 처음에는 같다고 생각했어요. ' 교사선교회 회원이라고 해서 평균 이상을
또 다른 무엇이냐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양육을 잘하는 사람은 교육도 잘해. 교육 하고 있다고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두 가지 답안지를 갖고 어느 것이 맞다고 을 잘하면 양육도 잘해.' 근데 아니더라고 봐요. 그것을 각자의 개인기에 맡겨 놓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두 명칭에 대한 갈 요. 둘은 다른 거에요. 양육을 하는 기재하 있죠. 적어도 일반 교사의 평균 이상을 해
등이 불러오는 불편함도 그렇지만, 실제 고 교육을 하는 기재는 달라요. 그리고 둘 줘야 그래도 우리가 우리의 힘을 안으로
로 그게 교사선교사가 교육선교사든 그 은 다르지만 동등한 거에요. 한쪽이 더 영 쏟지 않고 교육을 위해서 밖으로 쓰고 있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적인 거라서 다른 것보다 우위에 있는 상 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