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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을 떠나 본질에 주목해보겠습니다.
                                             기독교사의 역할을 ‘복음적 실천’과 ‘교육
                                             적 실천’으로 말씀하셨죠. 기독교사의 복 위의 개념이 아니죠. 그런데 우리는 양육
                                             음적 실천이란 디모데양육인가요?               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이걸
                                             그것도 될 수 있죠.                     먼저 해야 하고, 제일 강조해야 하고, 끝
                                                                             까지 잡아야 한다고 말해왔어요. 웬걸. 그
                                             아니면 복음적 실천의 한 부분이 디모데           게 아니라는 게 지금 드러나고 있어요.
                                             양육인건가요? 
                                             그건 사람의 부르심에 따라 다르지 않을           결국 복음적 실천과 교육적 실천의 귀결
                                             까요? 어떤 카테고리로 볼 것인가. 거기에  점은 뭘까요?
                                             따라 양육의 양상이 달라질 것 같아요. 어 양육과 교육은 기독교사의 내면에서 통합
                                             떤 사람은 내 입으로 '예수님 믿으세요'라         이 돼요. 경험에 의하면, 그 통합은 한 교
                                             고 전했나? 이것이 복음의 실천이라 여기          사 안에서 내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그
             선교가 뭐예요. 복음 전하는 거잖아요. 복         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아니면 그 폭도 상 것을 의도적으로 하는 게 인위적이에요.
             음이 뭐죠? 하나님 나라가 온다는 거예           대적으로 넓은 사람은 다른 직간접적인 활 오히려 분절되죠. 복음적인 것도 아니고
             요. 하나님 나라가 복음이라고 얘기하면           동으로 범위를 넓힐 수 있겠고요.              교육적인 것도 아닌 이상한 형태로 변질
             선교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개념이                                          할 가능성도 있어요.
             죠. 그렇다면 제자는? 하나님 나라를 이루         기독교사의 교육적 실천이란 무엇인가요?   또한 둘은 끄트머리에서 하나로 만나요.
             는 사람이잖아요. 그렇게 세 가지가 맥이          어떻게 정의가 될지 모르겠어요. 아까 말          하나님 나라로 귀결되는 거죠. 어떤 사람
             통하면,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교육계에           했듯이 교육은 쌓아가는 부분이라 우리            은 이쪽에 어떤 사람이 저쪽에 집중했지
             서 이루지? 나는 교육계에서 하나님 나라          가 어디까지 가야 할지를 지금 정하는 건          만, 결국 하나님이 맞추고 계신 전체 그림
             를 만드는 사람이네? 그럼 내가 지금의 교         어려워요. 어떤 분들은 교육적 실천을 교          의 퍼즐이에요. 귀결점으로 두 가지가 나
             사 역할을, 교육을 본연의 하나님 나라의          육 전문성과 같은 의미로 쓰시는 것 같아          란히 가야 해요. 양육이 한 쪽에 있고 다
             모습으로 돌리는 일에 충실해야지. 이렇           요. 온전한 개념일지는 모르지만, 그럴 수  른 쪽에 교육 실천이 있지만 결국 하나님
             게 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          있죠. 각자의 경험에서 오는 범주이기 때          나라로 귀결됩니다. '귀결로서의 서로에
             름입니다.                           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봐요. 조 대한 신뢰’가 필요해요.
                                             금 더 시간이 지나면 또 확장될 수 있겠죠.
             ӝةҮࢎܳ ݈ೞ׮                       이 영역은 우리가 지금 탐구하고 있는 중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의 회원들 입장에
                                             이에요. 때에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서 기독교사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
                                             교육학자나 교육실천가들의 말이 훨씬 더  까요?
             우리가 길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교사선           복음적일 수 있어요. 더 성경적일 수 있어         아이들 잘 가르치는 거죠. 본인이 할 수 있
             교사냐 교육선교사냐’의 이야기를 어떻            요. 그래서 함석헌 선생의 책 같은 것을 많 는 영역까지를 충실하게 하는 거예요. 그
             게 보십니까?                         이 읽어야 해요. 그 속에서 우리가 아직 가 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교사의 일
             우리가 어떤 사람을 길러내는데 있어서 20         져오지 못한 교육적 담론을 배워야 해요.  반적인 기준으로 '교사는 이 정도는 해야
             년 동안 힘을 쏟았어요. 그 결과 정말 꿈꿨        앞으로 개척할 지점이죠. 쌓아야 하고. 여 지'라는 그 수준의 약간 이상만 하더라도
             던 로드맵에 따라 교사선교사들이 길러졌           기에 진짜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죠.             다른 교사들의 모델이 된다고 생각합니
             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냉철하게                                            다. 그런데 그거보다 못하다면, '우리가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죠. 그러한 논의         복음적 실천과 교육적 실천은 통합될 수  왜 모였지?’라는 질문을 계속할 수밖에 없
             의 자연스러운 결과물로 명칭이 결정되는           있을까요?                           어요.
             거죠. 여기에 대해서 깊게 이야기하다 보          두 가지가 같은 건 아니에요. 교육과 양육 지금으로서는 그것을 담보할 수 없어요.
             면 교사선교사냐 교육선교사냐, 아니면            은 달라요. 처음에는 같다고 생각했어요. ' 교사선교회 회원이라고 해서 평균 이상을
             또 다른 무엇이냐가 나온다고 생각해요.           양육을 잘하는 사람은 교육도 잘해. 교육 하고 있다고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두 가지 답안지를 갖고 어느 것이 맞다고          을 잘하면 양육도 잘해.' 근데 아니더라고 봐요. 그것을 각자의 개인기에 맡겨 놓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두 명칭에 대한 갈         요. 둘은 다른 거에요. 양육을 하는 기재하 있죠. 적어도 일반 교사의 평균 이상을 해
             등이 불러오는 불편함도 그렇지만, 실제           고 교육을 하는 기재는 달라요. 그리고 둘 줘야 그래도 우리가 우리의 힘을 안으로
             로 그게 교사선교사가 교육선교사든 그            은 다르지만 동등한 거에요. 한쪽이 더 영         쏟지 않고 교육을 위해서 밖으로 쓰고 있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적인 거라서 다른 것보다 우위에 있는 상          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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