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ח ࢤп ٟפu 2006년 3월 | 이우영 간사님 타시도 전출 о ח ߓо द 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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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 김정현 선생님께서 대구교 인천 학교생활이 편해지고 소은이의 출산
대 사역 책임자로 세워짐 을 앞두고 있을 때 쯤, 사실 그때는 아이 2006년 3월 | 양육 2세대가 연결됨
지원이가 태어나고, 범기가 태중에 있을 의 양육문제로 부모님 계신 서울에서 몇 대구에 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교대생
때 대구에서 본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가장 년 더 있고 싶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계속 들 양육이 시작됩니다. 미영·수진 자매
으로서의 책임감에 인천에서 시험을 봤습 타시도 전출을 냈어도 대구에서 올라오 님, 태수·태준 형제님를 양육할 수 있었
니다. 감사하게도 시험에 합격하며 인천에 는 사람은 턱없이 적고 인천에서 내려가려 고 은경·민진 자매님는 김정현 선생님께
서 교직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교대사역을 는 사람은 몇 배로 많아 경력이 적은 저는 서 양육하셨습니다. 나중에는 솔라자매님
접어야 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한 김정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겨 도 함께 했습니다. 태수형제님를 제외하
현 선생님께서 교대사역을 감당하시게 되 울 방학 때 장학사님의 전화를 받습니 고(영어과),모든 지체가 음악과 지체여서
었고 그 기간 동안 저는 부모님과 함께 지 다. 그 장학사님은 일반적이지 않는 말로 교대사역의 일정이 음악과 일정과 같이 가
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일찍 하나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대구로 갈 마음 변 기도 했습니다. 같은 과 지체여서 서로 협
님께 가신 지금, 그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치 않았습니까?” 그 음성은 마치 서울에 력이 잘되었고 무엇보다 음악성이 뛰어나
은혜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 있고 싶다는 제 마음을 아시고 하나님 합창과 연주가 있는 예배가 시작이 되어
께서 저에게 물어보시는 음성처럼 들렸습 너무 감격스러웠습니다.
니다. “예 변치 않았습니다.” 저는 신앙고
백(?)하듯 대답을 했고, 기적처럼 대구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준비
해 주셨던 하나님의 여러 이벤트를 보며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확실
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