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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그 기대를 가진 상황에서 열두해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이 등장하
게 되어지니까? 모든 일이 지체되자 조급함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
과 제자들 사이의 미묘한 차이입니다. 예수님이 여인을 찾으신 것은 함께 대화를 나
누심으로 공식적 치유를 선포하시고 더이상 숨지 않고, 부정한 여인이 아닌 정한 여
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불러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어디에다 관심을 두
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상황대로 본다고 한다면? “야이로의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고, 시간을 지체하여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면 그
탓이 혈루증을 앓는 여인에게 있다고 생각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기에 제자들이
짜증 섞인 반응을 보인 것입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 속에서 내 모습이 보이지 않
습니까? 살려야 할 사람은 살리지 않고, 상황과 환경에 의해서 다급하게 몰아치며,
생명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보다는 사회적 통념을 따라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요? 짜증 섞인 반응 속에서 여인을 바라보는 제자들의 시선이 얼마나 따가웠을까
요? 우리는 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은 제자들과 분명하게
달랐습니다. 그 어떤 “차별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주고 계신 것입
니다. 야이로의 딸의 목숨이 소중한만큼 혈루병으로 시달린 여인의 삶도 ”회복시켜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평안히 가라”. “평화를
지니고 가라“. 얼마나 아름다운 말씀입니까? 예수님이 여인의 마음에 평화의 씨앗
을 심어주셨고 여인의 삶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지체되는 사이에
야이로의 딸이 숨을 거두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
만 하라”고 말씀하시고, 야이로의 사랑하는 딸을 살려주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
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어느 누구든 차별이 없는 시선으로 바
라보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시선 때문에 오늘날 우리도 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구약에 보면 애가를 부르는 다윗에게서 사울의 죽음에 대하여 애통
하는 슬픔을 보게 됩니다. 사울의 과오는 가리우고 미덕만 찬양합니다. 이렇게 다윗
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절제되고, 겸손하며, 인격적인 시선을 갖추고 애도하는 바
른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느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선한 시선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
에도 “평안의 씨앗”을 심어줄 수 있는 시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착한 시선
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예수님의 선한 시선, 바울의 착한 시선을 가진 귀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
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