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A
3월의 둘째 주. 미술 시간의 ‘뇌구조 그리기’ 작품활동 시간.
교탁 앞 첫 줄에 앉은 A의 종이를 살펴보니, 아예 색칠하지 않았습니다. A에게 ‘조금 서둘러야겠는데?’라며 지나가는 한 마디를 말을 던졌어요. 하지만 별 반응이 없는 이 아이. 하교할 시간이 되어 아이들은 작품을 제출합니다. 여전히 아무런 색칠을 하지 않은 작품을 들고 제출하는 줄을 서 있길래 처음부터 다시 설명을 해주고는 ‘다시 해서 오세요’라고 했더니, A는 파랑 색연필로 서너번 쓱쓱 긋고는 제출한 친구들의 작품들 사이에 자기 것을 쓱 밀어 넣었어요. 그리곤 가방을 메고 집으로 가려 하네요. 나는 다른 친구들의 작품을 확인해주며, ‘A야 이리 와 봐. 이야기 좀 하자’ 교실 뒤의 A에게 말했습니다. 이때부터 A는 갑자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어요. “나는 가고 싶은데. 나는 안 하고 싶은데.”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슬금슬금 옆걸음질 칩니다. “잠깐만 이리 와 보렴”이라는 말은 A에게 닿지 않고, 반 아이들과 나는 ‘쟤 뭐지?’라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A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지요.
3월 셋째 주. 수학 시간의 짝 활동 시간.
짝과 함께 토의하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었어요. 서로 대화를 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주었어요. 학급의 아이들은 모두 짝과 해결 방법을 이야기하는,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A는 옆 짝과 아무런 상호작용이 없습니다. 대화는커녕 아예 짝과 5cm 정도 책상을 떨어뜨려 앉아요. 지금의 짝뿐만 아니라, A는 함께 앉는 모든 짝과 책상을 붙이지 않더라고요. 아예 이 친구와 다른 공간에 있는 듯이 생각하려는 인상을 주어요. A의 짝은 저에게 ‘선생님…’하며 난감한 눈빛을 보내고는,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어떻게든 수학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기 시작합니다. A는 짝과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가, 조금 후에는 아예 엎드리네요. 수학책의 빈 곳에 게임 케릭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10분간의 짝 활동 시간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어요.
수업 후에 A의 짝이 저에게 말을 합니다. “선생님, A에게 문제를 같이 풀어야 한다고 말을 하니.. ‘꺼져’라고 말했어요” 짝이 상처를 받았나 봐요. A를 불러 함께 이야기해 봅니다. 자기는 짝이 말을 거는 것이 싫다네요. 짜증이 난다며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동안 애들한테 당할 때 나는 많이 참았거든요?” 그 말을 하고는 눈물을 주르륵. “애들한테 지금은 말 않하고 꾹 참았다가, 나중에 6학년 되기 직전에 한꺼번에 다 터트릴 거예요.” A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내가 불편한 걸 알아주시는구나’
:심리적 여유 공간을 주기
“A가 힘들다는 걸 공감해주면 어때요? 우리 반의 B도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않는데, B는 당당해요. 그런데 지금 A는 표정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불안해 보이고.”
“이 아이가 스스로 인식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A는 수업 시간 내내 불편을 느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나의 불편을 알아주시는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면 다를 것 같아요. 수업의 과업을 해내는 것이 A에게는 지금 너무나 불편한 상황인 거잖아요. “이런저런 해야 하는 것이 많아서 불편하니?”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면 어떨까요?”
수업 시간에 A가 늘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집중력이 오래 가지 않아서 자꾸만 게임 캐릭터 낙서로 빠져든다고 여겼어요. 그래서 교사의 태도는 A의 집중을 환기해 수업 내용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에 있었어요.
그런데 A의 수업 시간 중 모습을 녹화한 화면을 가만히 보는 선생님들의 눈에는 ‘불편함’이 보였나 봅니다. 화면 속 아이의 표정과 몸짓은 과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처럼 보였어요. 생각해보면 A는 수업 동안 나의 얼굴을 흘깃흘깃 곁눈질할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 그것의 정체는 불편함과 불안함일지도 모르겠어요. 교사와 수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딴짓에 몰입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상황을 살피는 불편함과 교사를 시선을 살피는 불안함.
“괜찮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주면 어떨까요. 일단은 A가 안전하다 여기고 안심할 수 있도록.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도 괜찮아’라는 말로, A가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정도를 물어볼 필요가 있어 보여요.”
“예전에 저희 반이었던 학생은 그림 그리는 것을 너무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아예 따로 노트를 주고, 수업 시간에 할 것을 다 했으면 거기다가 그림 낙서를 해도 좋다고 말해주었어요. 다른 데다 몰래 낙서하지 말고 괜찮으니 거기다가 마음 편하게 그리라고. 허용감을 느끼게끔.”
‘내가 불편한 걸 알아주시는구나’
A가 수업 시간에 마음의 여유 공간을 갖도록 도와주는 일이 우선이구나 싶어요.어차피 지금 이 아이는 수업의 모든 과정을 성실히 참여하기를 어려워해요. 교사의 기준을 들이대며 참여를 독려할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이 얼만큼인지 묻고, 마음 편안히 그만큼만 해도 괜찮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도와주어야겠어요. 수업에 참여가 어려워 딴짓을 할 때도 눈치보며 불안해하지 않도록, ‘A 전용 그림 낙서장’을 마련해주면 어떨까? 이것 또한 강제되지 않도록 아이의 뜻을 물어볼 일이지 싶어요.
이해력은 괜찮을까?
:인지적 능력을 확인해보기
“출발점을 알아야 하잖아요. A를 제대로 알려면, 이 아이의 인지적인 측면은 어떤 상태인지 확인이 필요할 수 있어요.”
혹시 A가 수업 시간에 교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관심이 옮겨가는 건 아닐까? 나의 수업은 교사와 학생들 사이의 대화가 이어지는 형태입니다. 스무명의 넘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니, 발문의 수준과 상호작용의 속도는 우리 반의 평균적인 아이들에게 맞춰지기 마련이지요. 이 아이가 그것에 참여하기에 인지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닌지 점검이 필요하겠어요.
“내 아이도 인지능력이 낮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부모님도 아이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지 차근차근히 해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을 거예요. 그저 말 안 들으면 혼내고, 시키는 것 안 하면 답답하고 그 정도였겠죠.”
“부모님의 삶도 여유가 없을 수 있어요. 이 아이에게 뭘 해주어야 하는데, 생활이 바빠서 그럴 여력이 없는 현실”
4월의 상담주간에 만난 A의 어머니는 빠듯한 가정생활에 여유가 없는 듯했어요. A 아버지의 딱딱한 훈육 방식에 대하여 걱정을 하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주기적으로 우리 반의 수업을 들어오시는 상담 선생님과 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A가 받을 수 있는 인지적 검사와 더불어 사회성 검사를 알아봐 주셨어요. 검사에 참여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A의 어머니와 상담을 해보겠다 하였습니다. 어머니가 A의 친구들 사이에서의 모습을 아는지, 가정에서는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좀 더 깊이 들을 필요가 있겠다는 뜻이었지요. A에게 관심을 가져주시는 그것이 감사합니다. 담임교사와 더불어 상담교사가 이 아이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함께 고민하고 접근해가는 협력이 든든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