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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교사선교회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 당신이 함께 하던 그때의 교사선교회는 당신에
나요? 게 어떤 의미가 있었나요?
TEM은 제 교대생활의 전부였어요. 여기서 꿈을 그때의 교사선교회 양육은 마치 시집보내기 전의
키웠고 선배들을 보며 그 꿈이 구체화되었어요. 친정집 같은 느낌이었어요. 11시 넘게 양육을 해
선배들의 삶이 늘 도전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으 주시고, 차를 못 탈 것 같으면 리더 김지연(현재 금
며 함께 함이 감동이었어요. 음. 하나님의 나라의 산) 선생님의 남편이신 이상찬 선생님은 저희들
축소판 같았어요. 헌신하지만 더 큰 것을 얻는. 세 을 본인 차로 데려다 주시기도 했죠. 양육 받으러
상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그 감동. 그런 밭에 감 가면 뜨뜻한 저녁밥으로 늘 환대해주시던 선생님
추인 보물 같은 공동체였습니다. 의 어머님도 계셨어요. 삶을 나누고 밥을 같이 먹
고 서로의 성장에 마음을 드렸던 그 때가 참 좋았
선포 당시 비전2020은 당신에게 어떤 느낌 또는 던 것 같아요.
생각을 갖게 했나요?
그때 함재희 선생님과 함께 자취를 할 때였는데 선포 당시 비전2020은 당신에게 어떤 느낌 또는
비전2020 위원이었던 함재희 선생님이 모임 이후 생각을 갖게 했나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줄 때면 그 멋진 일들에 동 2002년은 제게 특별한 해 같습니다. 결혼을 통해
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막연했던 충청도 청주로 저의 시선이 옮겨졌어요. 당시엔 개
저의 사역의 방향도 구체적으로 고민해보는 시기 척이라는 단어가 선교회 멤버들 사이에 마음의 울
였어요. 그리고 양육이나 작은 소모임에서 우리 림으로 작용하던 분위기였고 몇몇의 후배들은 이
는 자연스럽게 이런 사역의 방향이나 비전에 대 미 임용지역을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지역으로
해 꿈꾸고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형성됐었죠. 정하고, 실제로 떠나기도 했어요. 그때는 일어나
라. 떠나라. 개척하라 ~ 그런 분위기였던 것 같아
비전2020 이후 지금까지 우리 선교회 또는 회원 요. 교대 동아리방에 멤버들과 모여 예배를 드리
인 당신 개인에게 가장 인상 깊거나 감사한 부분 며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새로운 지역에 대
은 무엇인가요? 한 기대로 설레던 시간이었습니다.
항상 비전2020 관련하여 양육이나 소모임에서 이
야기를 나눌 때면 저는 주로 ‘문서사역’쪽으로 이 비전2020 이후 지금까지 우리 선교회 또는 회원
야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지금 가장 감사한 것은 인 당신 개인에게 가장 인상 깊거나 감사한 부분
‘TEM북’이예요. 온누리교회에 두란노가 있고 은 무엇인가요?
IVF에는 IVP출판사가 있듯 우리 교사선교회에 저는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시는 선생님을 주
도 출판사가 설립되어 교육 영역에서 헌신하고 계 신 것에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별무리학교의 선생
시는 수많은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세대를 거쳐 전 님들, 이음 연구소 선생님들, 기초학력에 힘쓰시
승되고 세계로 확장되길 꿈꿨었는데, 김선희 TEM 는 선생님들, 섬김의 본을 보여 주시는 대구지역
북대표님과 여러 TEM 선생님들의 수고와 헌신 선생님들, 퇴직 후에도 멀리 있는 후배들을 보살
덕분에 이 꿈이 현실이 된 것이 가장 감사하고 기 펴주시는 선생님들, 양육과 말씀으로 지원해주시
쁜 일입니다. 던 선생님들, 제자 양육으로 주말이 없던 선생님
들, 보이지 않는 자리의 여러 선생님들. 이분들의
믿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이 우리가 믿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신 것이 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