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선교회 지체 여러분, 안녕하신지요.
저는 인천 서부지역 정휘범입니다.
학기 말 바쁜 시간을 거쳐 이제 방학의 초입에, 혹은 방학을 코 앞에 둔 시간을 지내고 계실 듯 합니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7월 18일, 지난 주 금요일은 서이초의 한 선생님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지 1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작년의 그 때에도 학기말 업무로 모두가 바쁜 시기에, 이제 갖 2년차에 접어든 서이초의 선생님의 자살 뉴스가 우리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왔지요. 전국에서 도착한 추모 화환이 학교 담벼락을 덮고, ‘미안합니다’는 포스트잇이 수 없이 교문을 채웠습니다.

슬픈 소식은 이어졌습니다.
대전의 한 초등학교 중견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의정부의 두 젊은 선생님이 들어가시고,
용인의 경력많은 고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군산의 초등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끝없이 이어질것 같은.. 잇다른 선생님들의 죽음에 우리는 가슴을 쳤습니다.

누군가의 자발적인 섬김으로 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열 한 번의 집회가 연이었습니다.
74만 명의 교사들이 모였습니다.
9월 4일, 징계의 두려움에도 ’공교육 멈춤의 날‘이 진행되었습니다.

‘당신이 나입니다’
이 구호에 많은 교사들이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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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1주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한 주는 전국에서 추모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많은 교육청에 추모 공간이 마련되었습니다.
희생되신 선생님들의 학교에는 또 한번 하얀 국화와 포스트잇이 모였습니다.

어떤 교사 단체는 지난 집회들의 추모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어떤 교사 단체는 선생님들의 안부를 묻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어떤 교사 단체는 교사들의 공감과 의견을 모아 온라인 자료집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교사 단체는 추모회와 교사 발언 모임을 열었습니다.
서울교대에서는 3일 동안의 추모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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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초 사건 1주기.

저는 우리 선교회의 입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뿐일까요? 많은 선교회의 회원들이 공동체의 리더십을 주목하지 않았을까요. 추모의 움직임이 가득한 지난 수, 목, 금이 지나고, 주말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에 이르렀습니다.

아무런 이야기가 없습니다.
선교회는 서이초 1주기에 관하여 아무런 언급도 없습니다.
SNS를 켜면 수없이 볼 수 있는, 그 흔한 추모의 카드뉴스 하나 없습니다.
공동체가 마음을 모을, 관련 기도제목 하나 내놓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개인적으로 많은 지체들이 공감하고 추모에 참여하고 있다고요. 네, 그렇지요. 교사라면 어느 누가 같은 마음이지 않을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만 참여하면 그 뿐일까요? 그렇다면 제자양육도 개인적으로 열심히 하면 될 것을, 우리는 왜 공동체로 모이나요? 디모데 양육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아실 거에요. 특정 공동체 없이도 개인적 부르심으로 학급 아이들에게 성경공부를 하는 크리스천 교사들이 은근히 계시다는 걸요. 개인의 열심과 실천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존재와 메세지가 주는 힘이 있기 때문 아닌가요? 개인적 참여와 공동체의 메세지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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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교사들의 고통에 관하여 무얼 말하는지요?
우리 ‘공동체’는 교사들의 어려움에 참여하나요? 어떻게 참여하나요?
우리 ‘공동체’는 교사들의 죽음을 어떻게 보듬고 위로하나요?

서이초 1주기를 맞아,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지 않은 많은 교사 단체들이, 교사들의 울음에 함께 울고 있습니다.
교사의 권익을 위해 설립된 많은 교원 노조들이, 아직도 여전한 교사들의 슬픔을 보듬고 있습니다.
세속적 영역에서 많은 당사자들이, 같은 비극을 막고자 각자의 영역에서 힘쓰고 있습니다.

우리는요?
추모 행사에 참여하는 나, 슬픔에 검은 리본을 다는 너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으로 모이는 ‘우리 선교회‘는요?

서이초 1주기에, 우리 교사선교회가 내 놓을 이야기는, 정말 아무 것도 없단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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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는 로마서 12:15절의 말씀을 다시 한번 떠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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